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 것은 무척 재미있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누구나 알만한 사람의 이야기라면 지금까지 상상했던 모습과 알고 있던 사실들과 견주어 누군가 들려주는 비하인드 스토리에 상상에 상상을 더하게 됩니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 아주 흥미로운 주제 아닌가요?



지금부터 박옥주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 봅시다!

 

                                                                                                                                           @ 오숙현



한 작곡가의 애절한 혼자 사랑

 

올해는 로버트 슈만(R. Schumann : 1810-1856)이 탄생한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슈만의 곡을 연주하는 연주회가 많다. 슈만도 오르간 곡을 썼다. 엄밀히 말하면 페달이 달린 피아노(페달 클라비어:그림참조)를 위한 작품들이지만 이 악기가 사라진 탓에 현재는 페달연주가 가능한 오르간으로 연주된다. 우리가 흔히들 슈만의 음악을 논할 때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슈만과 클라라 슈만과의 사랑은 음악역사상 가장 유명한 러브스토리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일편단심 한 사람을 바라보았던 한 작곡가의 순수한 혼자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이 있었기에 음악이 있었고 역사에 남을 대작들이 탄생하게 된다.

 

슈만은 비크(F. Wieck)라는 그 당시 가장 유명했던 교육자이자 피아니스트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된다 비크에게는 그의 교육을 철저히 받아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우고 있는 아리따운 딸이 하나 있었다. 바로 클라라이다. 슈만은 자연스럽게 클라라를 알게 되었고 클라라는 슈만과 함께 피아노 공부를 하면서 시와 음악에 풍부한 감수성을 갖고 있는 슈만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딸, 클라라가 연주자의 길을 가기 바랬던 비크는 두 사람의 결혼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심지어 유산까지 포기시킬 정도로 거센 반대를 하였으나 끝내 슈만과 클라라는 결혼을 한다.

 

법을 전공하였으나 법강의 듣는 시간보다는 오히려 피아노에 앉아 즉흥연주를 하고 친구들과 모여 시를 짓고 낭송하는 시간을 더욱 좋아했던 슈만은 지나친 테크닉 연습으로 오른손을 못쓰게 되면서 점차 작곡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를 위해 많은 곡을 작곡한다. 그러던 어느날 이들 부부에게 한 청년이 찾아온다.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작곡을 하던 청년이 슈만의 곡에 매료되어 그에게 배우고자 찾아온 것이다.

 


그의 이름이 바로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 1833-1897)이다.

브람스는 슈만 부부를 음악적인 존경과 사랑으로 대하였으며 그들과 가족 같은 친분을 쌓게 된다. 그러나 슈만은 극심한 우울증에 환청이 들리는 등 정신적 질환이 악화되면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몇 번의 투신자살 시도로 끝내 46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남편의 죽음과 몇몇 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힘들어 하던 클라라 슈만 옆에는 항상 브람스가 있었다. 그는 클라라를 위로하기 위해 많은 작품을 쓰게 되고 특히 그의 유명한 독일레퀴엠또한 사실상 클라라를 위한 곡이었다. 대부분 레퀴엠은 죽은 자를 위로하기 위해 작곡하지만 브람스는 특별히 남아 있는 자들을 위로하는 내용으로 이 곡을 작곡하였다. 슈만이 죽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클라라를 오래 전부터 연모하던 브람스는 몇 번의 구혼을 해보기도 하나 그때마다 클라라는 영원히 슈만의 아내임을 다시금 인식시켰고 브람스는 사랑하는 그녀를 항상 옆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피아노가 생명인 클라라가 오른손 연주가 불가능하게 되자 실의에 빠진 그녀를 위해 왼손을 위한 피아노 곡을 작곡한 브람스, 음악으로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며 사랑을 표현하고 생활적으로 슈만의 아이를 정성껏 돌보며 그녀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녀 곁을 지켰다. 클라라가 죽던 날 브람스는 나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상실했다하는 말을 남기며 이듬해 그 자신 또한 클라라의 뒤를 따르게 된다.

 

스승인 슈만의 아내, 연상의 여인,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클라라를 가슴에 품고 평생 독신으로 살다 간 브람스, 그래서 더욱 깊이 있는 애절한 형언할 수 없는 가슴속의 사랑을 표현한 그의 음악은 연주를 할수록 가슴에 깊이 그 자국이 남는다. 올해가 슈만의 해라서 필자 또한 그의 음악을 연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연구를 하면서 절대 간과할 수 없었던 음악이 바로 브람스의 음악이었다. 올해의 슈만 작품 연주에 이어 내년에는 브람스의 오르간 곡을 다시 연주해 보고픈 생각이 든다.



@ 오르가니스트 박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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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음악사 2- 브람스와 슈만 그리고 클라라 (락()카페) |작성자 도토리

[출처] 음악사 2- 람스와 슈만 그리고 클라라 (락()카페) |작성자 도토리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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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인자한 웃음으로 맞이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음마의 음악진분들은 모두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계시지요!) 전문가의 귀로 듣는 소리는 좀 아쉬울 듯 한데, 마음으로 들으시는지 항상 좋다고 하십니다. 

소식지를 기획하면서 음악진 분들의 말씀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야심차게 준비했습니다! 
음악이있는마을 단원이기에 가능했습니다! (무조건 요청하기!)

음악이있는마을의 음악감독님이신 이건용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 오숙현



음악을 알면 - 이건용 (작곡가, 음악이있는마을 음악감독)
 


음악을 아는 사람들은 슬픔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 무슨 특별히 슬픈 일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막연한 슬픔이랄까요? 모차르트의 느린 2악장을 들으면 느껴지는 무엇,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들으면 상기되는 무엇, 그것을 슬픔이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막연한 슬픔이 이라는 거지요. 우리는 실제 생활에서는 슬픈 일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음악에서의 슬픔은 너무나 좋습니다. 오히려 행복하지요. 슬픈 음악을 들으면서 행복해 하는 것,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음악을 들을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삶을 조용히 음미해 보면 그려내는 것이지요.

 

음악을 아는 사람들은 삶의 약동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 약동도 이유가 없습니다. 슬픔과 더불어 삶의 본질적인 모습 중의 하나입니다. 봄에 꽃이 피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가슴이 뛰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무수히 많은 곤충과 짐승들이 알을 낳고 새끼를 낳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다만 살아있는 것이니까 삶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음악에는 그러한 힘이 있습니다. 음악은 시작하고, 자라고, 커지고, 작아지고, 다시 커지고, 높아지고, 폭발하고, 낮아지고, 낮아듭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음악은 원래 그런 것입니다. 그러려고 음악을 만드는 것입니다. 음악에는 삶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음악을 아는 사람은 균형을 압니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일년 열두달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항상 폭풍이 불지도 않습니다. 들판에는 무수히 많은 꽃들이 핍니다. 개망초만 피는 것 같다가도 또 언제 보면 달맞이꽃이 사방에 고개를 들고 또 좀 지나면 억새가 눈부시게 피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혹은 자연스러운 것은 지나치지 않습니다. 벚꽃이 아무리 좋아도 며칠 내에 집니다. 그리고 온 천지에 벚꽃만 있다면 그것 역시 지겨운 일일 것입니다. 음악의 기술은 균형의 기술입니다. 크게 하고 싶으면 먼저 작은 것을 취해야 합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감추어 두어야 합니다. 반복이 잦아지면 의미가 적어집니다. 이따금 균형 자체도 깨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균형 자체도 지나치면 안되니까요.

 

특히 합창은 균형의 연습입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한 파트 안에서 적당히 자리잡아야 합니다. 커도 안되고 작아도 안됩니다. 낮아도 안되고 높아도 안됩니다. 그렇게 모인 한 파트의 소리가 다른 파트와 섞입니다. 그 섞임이 조화로워야 합니다. 어떤 때는 베이스가 더 잘 들려야 하고 어떤 때는 소프라노가 살아야 합니다. 소프라노가 바쁠 때 다른 파트는 적당히 물러서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고 또 때로는 대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시시각각 변해가며 음악이 만들어집니다. 그 균형의 세부사항을 일일이 다 밝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무수한 균형 속에서 우리는 음악을 듣고 만듭니다.

 

<음악이있는마을>에서 산다는 것은 그런 환경 속에서 산다는 뜻입니다. 삶의 슬픔과 약동을 알며 그 안에서 균형을 체험하고 몸소 이루면서 산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여러분과 같이 하는 이 마을의 삶이 행복합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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