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는 것보다 결과가 좋은 것을 선호하는 최근의 성과중심 문화는 직장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과 중심이라곤 하지만, 과정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과정이 나쁘면 결과가 좋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발 한 발 단단히 다져가는 과정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음악, 잘하는 것과 열심히 하는 것

음악은 전적으로 재능이 있어야 하는 예술임에 이견이 없다. 누구나 음악을 시작하면 세계 최고가 되고 싶어 한다. 카라얀이나 정명훈, 조수미, 신영옥, 김선욱 등을 떠올리며 그만한 재능이 아니면 음악을 안 하는 것이 좋다는 그런 식 말이다.

하지만 음악을 했다고 모두다 똑같이 세계 최고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는 합창단원하고 교향악단 단원하며 음악 선생님이 되고 작은 합창단의 지휘를 하며 무명의 작곡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얼핏 불공평해 보인다. 샬리에르의 독백처럼 ‘ 내가 신에게 그렇게 기도했지만 음악의 재능은 못된 모차르트에게 다주고 자신에게는 그를 알아보고 감동하는 능력만 주셨다’다고 말할 수 는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빼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못했다. 일반 사람들 보다는 좀 많지만 일류 음악인들보다는 턱없이 부족했다. 즉, 그냥 보통의 음악적 재능이다. 이 평범함은 음악을 안 했어도 크게 아쉬워 할 사람도 없을게 자명한 일이다. 나는 이 점을 음악을 시작하면서 알았다. 발전 속도는 늦었으며 레슨 반응도도 느렸다. 머리도 좋지 않아 음악적 지식을 축적하는 것도 미흡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생의 업으로 음악을 선택하였다. 대가가 되지 못할 것을 불 보듯 알았지만 질긴 운명의 끈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내가 놓지 못했다는 말이 더 적절하다.

남보다 빠르게 발전하지 않음으로 상처 난 자존심을 숨기고 평생 살아야 했다. 먹고 살만큼의 직업이 될 수 없음에도 고집스럽게 달려들기만 했다. 그것은 당연히 가시밭이다. 가지 말았어야 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뒤돌아보고 후회도 했지만 언제나 이미 늦은 때라고 여겼다. 사실 죽어도 그만둘 생각조차 없었다.

나는 악마에게 생명을 단축해서라도 재능을 더 받을 수 있으면 그리하고 싶기도 했다. 음악을 잘하는 약이 있다면 뭐라도 먹고 싶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악마는 나를 유혹조차 하지도 않았으며, 음악을 잘하는 약도 개발되지 않았다. 그저 하나씩, 한 걸음씩, 한 계단씩 스스로 앞으로 가는 방법이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28년을 살았다.

이제 쉰 살이 넘어 그런대로 음악을 하게 되니 악마가 온다 해도 거래 안할 것이며 부작용 있는 약이라면 먹지도 않을 자신감이 생긴다. 한숨에 정상을 가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천천히 그러나 튼튼히 가는 것도 살아보니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정되지 않았음에 언제나 불안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나를 음악으로 더 치열하게 달려들게 했다는 점에서 또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이 힘을 더 낸다는 점에서 내 삶에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풍요롭지 않았음에 음악의 본질을 더 맑게 볼 수 있었으며, 재능이 없었으매 겸손 할 수도 있었다. 또한 무수히 많은 나와 비슷한 음악가들의 몸짓들이 우습게 보이지도 않는다.       

다시 한 번 ‘음악은 잘하는게 중요하다.’라는 진리에 공감한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음악은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말하고 싶다. 잘하는 사람이 다섯 번 해서 완성했다면 못하는 사람은 100번, 1,000번 하면 기어이 완성할 수 있다. 많은 곡을 연습하지는 못해도 적은 곡이라도 최상의 상태를 유지 할 수 있다. 그렇게 열심히 한 음악에서는 분명히 아름다운 향내가 나고 가슴을 휘어 파는 감동이 담겨있음을 믿는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열심히 안하는 내가 될까봐 나는 지금도 두렵다.  

@ 지휘자 홍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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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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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지형 2010.04.27 0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너무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순간에 반추하여야 할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